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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페토 < 그 쇳물 쓰지 마라 > 감상평

by 머스크메론 2021. 10. 20.

 

21년 10월의 책으로 읽은 '그 쇳물 쓰지 마라'

 

생일 선물로 받은 책이다.

평소에 내가 즐겨읽는 사회 과학과 고전 문학, 수필이 아닌 다른 장르를 읽었다.

 

어렸을 때, 시집에 있는 시를 꼭 한 편씩 외워야 주말에 게임을 하게 해준

기억 때문이었는지 시집들은 영 손에 가지 않았지만..

이런 기회에 읽으면 좋겠다 싶어서 감사한 마음으로 부담없이 읽었다.

 

 

시집을 잘 읽지는 않지만, 그래도 시집을 어떻게 읽으면 좋은지는 아는 터라

'읽는다'에 집중하기 보다는 글자 하나하나에 집중하고 최대한 장면을 상상하면서

진득하게 시간 나는대로 조금씩 읽으면서 최대한 잘 읽어보려고 했다.

 

구성은 초반 부에는 '기사 + 제페토 작가의 시(댓글)', 후반 부에는 제페토 작가의 '시'로만 구성되어있었다.

 

일반 시집과는 다르게 신문 기사를 읽고 배경 지식이 있는 상태로 

해당 시를 마주해서 굉장히 구성이 신선하고 좋았다.

 

아직 나는 충분히 말랑말랑한 감성으로 몰입할 준비가 덜된 상태에서

오랜 시간 동안 작가가 살아오면서 다양한 환경에서 느낀 여러 시상에 의해 쓰여진 시 들을 

한 번에 읽게 되는 일반적인 시집과는 달리 이해가 조금 더 잘된다랄까.

 

 

그래서 그런지,

개인적으로는 이 책이 삼행시 같다고 생각했다.

 

주어진 단어들의 앞 글자만을 가지고 문장을 만들어내는 것처럼, 

주어진 기사나 주어진 환경을 가지고 풍부한 감성, 다른 시각으로 

시 한편을 써내는 방식이 삼행시를 연상시켰다.

 

조금 더 설명을 덧붙이자면

마치 잘쓴 재치있는 삼행시와 조금은 어거지처럼 보이는 삼행시가 구분되는 것 처럼

 

어떤 시들은 정말 감탄스럽도록 상황에 잘맞고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지 ? 싶은 것도 있고

 

어떤 시들은 시에 몰입되기 보다는 특정 상황에 조금 억지로 시적 감상?을 첨가하여 

어떻게든 시의 구색을 맞춰서 '시' 의 일반적인 모습을 갖추려는 작가의 노력이 먼저 보이는 시가 있었다.

 

그래도 전반적으로 다양한 단어들과 표현을 바탕으로 특정 사물이나 시점에 몰입하여

문학적으로 환경이나 상황을 표현해내는 작가의 능력은 굉장히 인상깊었고

수려한 문장을 구사하는 능력이나 어떤 상황이나 사물의 눈으로 깊게 몰입하는 것,

그리고 감성적으로 그것을 풀어나가는 문장들이 인상적이었던 시였다.

 

무신론자, 동물 애호가, 약자의 편에서 본 사회의 모습

이런 작가의 개인적인 기호들을 시에서 엿볼 수 있었는데, 

어떤 부분들은 내 가치관과는 맞지 않아 시의 감상과는 별개로 조금 몰입이 어려웠던 시들도 있었던 기억이 난다.

 

가끔씩 감정이 풍부해 질 때, 혹은 감상적이고 싶을 때 

꽂혀진 이 책을 한 두 번 더 펴보지 않을 까 싶다.

 

 

 

하지만 쇠사슬을 끊을 수 없었던 어미 곰은 새끼 곰을 끌어안고, 질식시켜 죽였다. 자신의 새끼 곰을 죽인 뒤, 이 어미 곰은 스스로 벽으로 돌진했고 머리를 부딪쳐 죽은 것으로 알려졌다.

 

할머니 쌈짓돈 훔치지 말라 
계약직 막개딸 밤새 일해 번 돈
기름 좀 넣으셔
뭐라도 사드셔
조끼 주머니에 찔러 넣은 죄송한 푼돈
피다
……
그리하여 천국 가는날
들은 대로
읽은 대로
배운 대로
당신 설교 그대로 과연 그렇게 좋은 곳이었는지
낱낱이 비교할 수 있도록

 

누구나 가난하여
본의 아니게 평등한 이곳은
찬 공기가 고여 드는 빈민의 분지

힘겹게 숨 들이쉰 폐병쟁이는
한 평 남짓한 쪽방 공기를 
벌이 없이 축내는 것이 미안하여
폐에 스미기도 전에
마신 것에 얼마를 얹어 
밭은기침으로 토해냈다.